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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개인

동자동 사람들 ( 정택진 )

by 당나귀🐴 2022. 10. 9.
우리 주변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회의 보장제도와 함께 언급되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이 글은 쪽방촌이라고들 불리는 동자동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우리 주변에 계십니다.

분명하게 그들은 절대악인처럼 숨어계셔야할 분들이 아니고,
인구 비율에 따라 보기 어려운 분들도 아니고,
엄청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에 연관된 소수의 분들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존재하는 그분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들어가며

오멜라스(Omelas)는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도시다. ... 오멜라스의 시민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의례적으로 벽장 앞에서 아이와 마주해야한다. 일종의 통과의례다. 시민들은 오멜라스가 누리는 모든 기쁨과 행복이 벽장 안에 갇혀 있는 저 아이의 존재로 인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안다.

이 책은 여러 개입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겪는 가난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시도다.

 

돌봄의 역설

 

홍인택은 명의 도용 사건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채 자신의 일방적인 돌봄을 알아주지 않는 정영희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600백만원의 미납금이나 이로 인해 발생할 미래의 경제적 위험, 그리고 그러한 과정 자체가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은 홍인택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명의 도용 브로커를 소개한 일은 "밥 치워주고 밥해먹에고 똥오줌도 다 치워"주거나 "통닭"을 사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돌봄의 연장선일 뿐이였다.
...

정민희는 정영희가 수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드러낸다.
"수급을 받는데 얘가 돈 관리를 못해요. 오늘 그냥 50만원을 쓰면 쓰는거에요. 한달을 거렁뱅이 생활을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거지, 절제를 못해요." ...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급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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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상정하는 "최저생활" 혹은 사람다운 삶은 일상적 돌봄을 포함하지 않은 겅제적 차원에서의 삶이다. ...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적장애는 그녀에게 경제적 지원 이외에 또 다른 일상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근로 능력이 없기에 임금노동을 통해 자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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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는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위해 수급비를 야껴 매달 3~4만원의 용돈을 송금하고 있다. '천만원이 있어도 다 써 버릴 것이다'라는 큰언니의 추측과 다른 모습니다. 아들을 만나러 광주로 갈 기차 요금도 저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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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제도 속해서는 자활 능력도 없는 '일반수급자'다.
"유령이 된 것 같았어."
정영희는 자기 경험을 "유령"이라는 낱말로 표현한다.
"유령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복지 시서로가 제도 속에서 정영희는 분명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성은 지적장애인, 노숙인, 일반수급자라는 형태로 환원될 때에만 인정받는다. 거기에 '정영희'라는 정체성은 없다. ... 

하지만 성적 용망을 표출하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 관계를 형성 할 떄는 정영희는 성적 용망을 자기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

 → 단순하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바에, 자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을 표현하겠다라는 의지가 느껴진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법

 

주민들에게는 한 번에 몇 구의 시신이 운반되는지, 관이 어떤 형태로 쌓여 운반되는지, 영정 사진과 함께 관을 운구하며 고인에게 마지막 조의를 표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물질화된 몸이 어떻게 다루어지는가의 문제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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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만 지불하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반 장례에 비해 무연고 장례는 통과의례의 시작과 진행이 계속해서 지연될 수밖에 없다. 통과의례가 지연될수록 망자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시간 역시 지연되고, 그동안 망자의 몸은 얼어붙은 채 "그 차디찬 데"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강영섭은 실질적인 절차가 크게 다르지 않고 더 많은 비용이 드는데도, "굳이" 무연고 장례가 아닌 일반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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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엽섭의 경제적 상황과 건강은 점차 나빠졌다. 강영섭의 쪽방을 방문했을 때, 그는 내게 수십 개의 처방전과 냉장고 전체를 가득 채운 각종 약을 보여주었다. 그가 제공한 돌봄이 스스로의 소모와 파괴를 대가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인간적 돌봄을 서로가 진행하는데 얼마나 많은 것을 지불해야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였다. 그들의 존엄을 지키려고, 서로가 노력했지만 돌아온건 마지막 약뭉치와 자신이 가져야할 빚이였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여기에 나눠주는 게 정말 많자나요. 이게 주민들을 마비시켜요. 이제 고마움도 못 느끼는 거죠. 나눠주면 좋아하긴 하는데 막상 물어보면 누가 준 건지도 몰라요. 비판적으로 봐야하는데 그게 안되는 거에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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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활사업에서 "돌려준다"는 느낌과 "소속삼"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활사업은 결코 "내가 좋아서 다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는 자활사업을 거부하고 일반수급자로 남아 소소한 노동을 통해 동자동사랑방에서의 소속감을 추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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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있던 주민들은 다음 달에도, 또 그 다음 달에도 짜장면을 들고 찾아오는 봉사자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현장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열차례가 넘는 짜장면 나눔 행사가 있었지만, 이들은 단 한번도 짜장면을 먹지 않았다.

단순히 그들에 대한 도움을 경제적인 지원 정책으로만 생각하면 안된다. 그들에게 자존감, 자존심, 인간의 존엄성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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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물의 시작, 즉 줌에 대한 최초의 인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아닌 척하기는 줌에 대한 상호 인지를 차단한다. 따라서 줌에 수반되는 돌려줌의 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자신이 받은 도임이 돌려주지 못할 정도로 큰 것이라 하더라도,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에 응답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인격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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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쿵 부시맨에게는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을 모욕하고 비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사냥꾼이 너무 많은 짐승을 잡으면 마치 자기가 추장이나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을 하기 쉽다. 결국 자만심 때문에 언젠가는 부족의 누군가가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시맨은 사냥꾼의 능력을 의례적으로 모욕하고 비난함으로써 교만해지지 않도록 억제한다.

...

주민들이 보여주는 비난과 헐뜯기는 부시맨의 "모욕해야 할 의무"와 비슷하다. 물건을 나누어주는 이들의 자신의 능력과 호의를 드러냄으로써 쪽방촌 주민들을 타자화하고 단순한 수혜ㅈ의 위치로 전락시키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나가며

벽장과 그 바깥의 부분적인 연결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과 계속해서 마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

우리는 타자의 삶을 모른다. 쪽방촌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에도 결국 주민들이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하는 까닭은, 이러한 시도가 전미래 시적에 서서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구원적인 미래를 너무나 섣불리 제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